“이름을 바꾸고 나서야 내 일상이 낯설어졌다”

스페인에 온 지 어느덧 2년째다. 처음에는 내 이름이 이들에게 발음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주환”이라는 이름은 그들의 혀 위에서 부드럽게 굴러가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만든 이름이 ‘가말(Gamal)’이었다. 어색하고 임시적인 이름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스스로를 ‘가말’이라 소개하고 있었고, 심지어 내 노트북 폴더 이름도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 무렵부터 일상이 조금씩 낯설게 느껴졌다. 똑같은 커피를 마시고, 똑같은 길을 걷는데, 감정의 여운이 달랐다. 이름 하나 바꿨을 뿐인데 시선이 다르게 움직였다. 한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것들—거리의 색감, 대화의 속도, 식탁 위의 식전빵조차—이제는 새롭게 보였다. 나는 이전보다 더 자주 멈춰 서고, 더 천천히 살피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순간들이, 나에겐 의미 있게 다가왔다. 시장에서 할머니가 무심하게 건넨 인사, 지하철에서 종이책을 읽는 사람들, 아침마다 고양이와 마주치는 골목까지. 낯선 도시에서 익숙해지려 애쓰는 동안, 나는 오히려 ‘익숙함’을 의심하게 되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도 다른 표정이 숨어 있다는 걸 배웠다.
이곳의 풍경은 자극적이지 않다. 뚜렷한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런 조용한 흐름 속에서 오히려 사유가 깃든다. 작은 틈에 비치는 감정, 말로 옮기기 어려운 장면들, 그게 지금 내가 기록하고 싶은 것들이다.
‘가말’이라는 이름은 어쩌면 내 안의 또 다른 시선을 꺼내는 장치일지도 모른다. 길주환으로는 지나쳤을 일들을 가말의 시선으로는 붙잡게 된다. 그리고 그 시선들이 모여 언젠가는 하나의 결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적는다. 아무 일도 없었던 날의 한 조각을.
그게 언젠가 나를 설명해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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